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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타월: 목욕탕의 상징

이름은 이태리지만, 이태리타월은 한국에서 만들었어요. 부산의 섬유 공장에서 시작해 전국 목욕탕으로 퍼진 이야기예요.

검은 줄무늬가 있는 초록색 이태리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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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왔을까

정부 간행물은 1967년 한일합섬에서 개발됐다고 하고, 지역 언론은 1960년대 부산을 출발점으로 꼽아요.

누가 만들었는지는 덜 분명해요. 김필곤이라는 이야기도, 한일합섬의 김원조라는 이야기도 있고, 뒤의 보도에는 서로 다른 주장과 김필곤 이름으로 등록된 목욕 장갑 이야기가 나와요. 원단 개발, 디자인 등록, 판매를 각기 다른 사람이 했을 수도 있어요.

가장 무난한 설명은 "1960년대 부산에서 개발된 한국의 때수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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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태리"일까

흔한 설명은 처음 만든 타월에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비스코스 레이온을 썼고, 그 거친 촉감이 때 밀기에 딱 맞았다는 거예요. 정부 간행물도 이렇게 설명해요. 하지만 수입 섬유 기계에서 이름이 왔다는 보도도 있어서, 이탈리아 원단설은 정설이라기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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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밀기는 타월보다 오래됐어요

지금의 때수건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한국 사람들은 몸을 문질러 씻었어요.

국립민속박물관 이인혜 전 학예연구사는 고려 시대 기록에서 이미 때를 벗기는 데 신경 썼던 흔적을 짚었어요. 그렇다고 지금의 세신이 900년 동안 그대로 이어졌다는 뜻은 아니에요. 옛 씻기 습관과 근대 목욕탕의 세신은 이어져 있지만, 역사는 따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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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세게 밀까

집집마다 욕실과 온수가 없던 시절엔 목욕탕에 가야 씻을 수 있었어요. 명절을 앞두고,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가던 목욕탕은 작은 행사이기도 했죠.

한 연구자는 세게 미는 습관을 목욕탕에 갈 수 있는 횟수와 연결해요. 자주 못 가니 한 번 갈 때 제대로 벗겨 내고 싶었고, 이태리타월이 그걸 쉽게 해 줬다는 거예요. 주거 환경, 살림살이, 새 도구가 어떻게 맞물렸는지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고, 증명된 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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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신사는 언제부터?

한국 목욕의 역사를 다룬 보도들은 첫 전문 세신사가 1960년대 후반쯤 생겼다고 봐요. 첫 세신사나 첫 목욕탕이 어디였는지는 아직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어요.

국립민속박물관 연구자는 1970년대 신문을 근거로 남탕에서 먼저 생기고 여탕은 나중이었을 거라고 추정했어요. 어디까지나 추정이에요.

세신은 기술이 필요한 일이 됐어요. 박물관 조사에는 지역마다, 남탕과 여탕마다 도구와 자세, 손놀림이 다르다는 기록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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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이전의 기념품

외국인의 관심은 새로운 일이 아니에요. 2015년 한 신문 기획 기사는 1990년대 일본인 관광객이 세신을 받아 보고 남대문시장에서 때수건을 한 보따리씩 사 갔다고 전해요.

요즘은 1인 세신샵과 여행자들 덕분에 세신이 웰니스 경험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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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세신 받기

1:1 세신을 예약할 수 있는 세신샵이에요.

오늘은 어디서 목욕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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